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명보호/논란과 평가 (문단 편집) === 신구 조화의 실패 === [[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20131219/59647142/5|홍명보호 평균나이 24.9세]] 위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우대하던 기조의 연장선에 있는 비판점으로, 막 유망주를 벗어난 자원들을 대거 채용을 일삼은데다 2002 황금 멤버들의 물갈이 시기까지 겹치며 신규 자원들이 유독 많았던 엔트리로 거론된다. 정량적으로도 월드컵 참가국 중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두번째로 평균 연령이 낮은 팀이었고 감독이던 홍명보 본인 또한 당시 44세로 [[니코 코바치]], [[사브리 라모우치]](42세)에 이은 두번째로 젊은 감독으로 좋게 표현하자면 젊은 에너지가 가장 돋보이던 엔트리였다. 하지만 물갈이도 물갈이 나름이지, 선수들의 구심축과 관록을 책임질 자원마저 전멸했을 지경으로서 신구 조화가 역대급으로 엉망이었던 엔트리로도 평가받고 있다. 단순 나이만이 아니라 이전 월드컵을 경험하던 자원은 고작 5명으로서 18인이 월드컵을 막 데뷔한 햇병아리들이었고, 2006 월드컵부터 2회 이상 월드컵에 참여하던 선수는 [[박주영]] 고작 하나 뿐이었으며 이마저도 입지상으로 대표팀에 영향력을 발휘할만한 재목은 아니었다. 만 나이로 30대였던 선수는 [[곽태휘]]가 유일했지만 기용해놓고 한번도 쓰질 않았던데다 만으로 29세였던 [[이근호]]가 군계일학급 활약을 보이면서 관록의 품격을 보여주며 어린 선수들의 초라함만 돋보일 뿐이었다. ~~정성룡과 박주영은 나잇값 못한건 넘어가자~~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자원들만이 출전하느라 선수들의 구심점은 무게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낯설기만한 필드 위 선수들은 허둥대기만 바빴다. 전후 월드컵 엔트리와도 비교되는데, 엔트리 중 월드컵을 2회 이상 경험한 베테랑으론 [[히딩크호]]의 [[황선홍]]과 [[홍명보]], [[허정무호]]의 [[박지성]]과 [[이영표]], [[신태용호]]의 [[기성용]], [[벤투호]]의 [[손흥민]]과 [[김영권]] 등등 관록을 책임질 멤버들은 반드시 존재했었다. 그나마 [[아드보카트호]]가 기존 고참들의 줄은퇴로 세대교체에 허덕이곤 했어도 [[이운재]]와 [[최진철]][* 최진철은 이전 2002 월드컵이 유일한 경력이긴 했지만, 98 월드컵을 목전까지 이뤄내긴 했었고 나이와 실력을 겸비하는 위상으로 당당한 주전을 차지했던 선수였다.] 등 기강을 잡아줄 인재는 존재했기에 마냥 젊은 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교훈을 각인시켜 주었다. 우승국이던 독일도 마찬가지로 [[미로슬라프 클로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 등 베테랑이 팀을 안정적으로 인도시키는 활약상으로 신구 조화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이랬던 독일도 [[2018 러시아 월드컵|차기 월드컵]]에선 세대 교체 실패로 [[카잔의 기적|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역대급 수모를 겪고 만다.] [[구자철]]의 주장 선정도 패착이었다 평가된다.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 경력을 바탕으로 지정된걸로 추정되지만 만 25세라는 주장치곤 어린 나이였고 애당초 U23과 A대표팀은 무게감부터가 다른 직책이었다. 말미암아 주장으로서의 무게감이 없었던건 물론이거니와 경기 내내 중압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포착되고 말았다. 일각에선 차라리 직전 월드컵 주전이었던 [[기성용]]이나 [[이청용]]이 더 적합했을 것이란 의견도 보이는 중. 홍명보호의 퇴진 이후로 구자철에게 짊어버린 짐을 덜어내고자 취지에서 기성용으로 주장을 위임시켰고 보다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사실 2002년 [[거스 히딩크]]의 유산들이 대거 퇴장하던 시기였던데다 고참들도 대부분 부진에 시달리던 외부 사정도 참작할 필요도 있었다. 이전 월드컵의 터줏대감이었던 [[박지성]], [[차두리]], [[이천수]],[* 특히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 K리그 복귀 후 중흥기를 누리던터라 국대 복귀 가능성도 언론에서 점쳐지곤 했다.[[https://www.ajunews.com/view/20140623150301978|#]]] [[김동진(1982)|김동진]], [[조재진]], [[이호(1984)|이호]], [[김정우(축구인)|김정우]] 등등 은퇴나 부상, 슬럼프 등 제각기의 이유로 국대와는 멀어졌던 터라 믿을맨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재목이 없던 점도 사실이었다. 홍명보로서도 이 비판을 마냥 좌시만 한건 아니었는지 [[박지성]]을 국대로 복귀시키려는 [[삼고초려]]를 시도하는 나름의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140108135051007|#]] 박지성은 이미 [[2011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했고 13-14 시즌을 끝으로 클럽 커리어도 종결시킨 완전한 은퇴 선수였음에도 캡틴 자원에 어지간히도 목말랐는듯 싶다. 성사되었더라면 은퇴 선수가 월드컵에서 뛰는 진광경이 생겨날 뻔했지만, 박지성의 무릎 부상 상태를 목도한 홍명보도 두손두발 다들며 박지성의 복귀는 끝내 무산되었다.[[https://www.ytn.co.kr/_ln/0107_201402150009144154|#]] 특히나 [[차두리]]의 부재 또한 상당히 아쉬었다는 감상평 또한 속출했다. 이전 평가전마다 차두리를 기용하며 이용 가치는 꾸준히도 어필했지마는 개인사로 인한 슬럼프에다 줄부상으로 실력을 증명할 기회는 없었고 최종 엔트리에선 결국 낙마했던 상태였다. 인과관계는 충분히 이해할만한 결정이었지만 정작 박주영 등에겐 이런 융통성을 발휘 안했다는게 문제. 직후 [[2015 아시안컵]]에선 차두리는 곽태휘와 함께 보란듯이 맹활약을 펼쳤고 맏형 역할로선 적임자였기에 그의 빈자리는 유난히도 거대했던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